"배가 고파서"…안타까운 생계형 범죄에 이어지는 '온정'
경찰, 비닐하우스서 밑반찬 훔쳐 먹은 노숙인에 취업 지원
전문가 "극빈층 '생존형' 범죄 증가…제도적 대책 필요"
(전국종합=연합뉴스) 강영훈 기자 = 농촌 마을 비닐하우스에 침입해 냉장고에 있던 밑반찬과 술로 허기를 달래고, 장갑과 목도리를 훔쳐 겨울을 나려 한 노숙인이 경찰과 복지시설의 도움으로 취업까지 한 사연이 뒤늦게 알려졌다.
최근 전국 곳곳에서 이같이 '살기 위해서' 범죄의 길에 들어선 노숙인이나 빈곤층 노인 등에게 처벌과 비난보다 재기를 도우려는 따뜻한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월 5일 오후 11시 15분께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한 농촌 마을 비닐하우스에 노숙인 황모(53)씨가 몰래 들어갔다.
황씨는 냉장고로 가 김치와 콩 반찬 등을 꺼내 허겁지겁 입에 넣고, 맥주 2병으로 목을 축였다.
굶주림이 일상이었던 황씨에게는 '만한전석'만큼이나 고급스러워 보이고 맛난 식사였다.
허기를 달랜 그는 한겨울 추운 날씨를 견디기 위해 비닐하우스 안에 있던 양말과 장갑, 목도리도 훔쳐 달아났다.
먹고 잘 곳이 마땅치 않던 황씨가 이 일대 비닐하우스를 턴 것은 이번이 벌써 네 번째.
피해 신고가 잇따르자 수사에 나선 경찰은 CCTV 분석 등을 통해 황씨를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경찰에 붙잡힌 황씨는 훔친 작업복을 며칠째 입은 채라 남루하기 그지없었고, 씻지도 못해 냄새가 진동하는 상태였다. 건강도 좋지 않았다.
경찰이 조사 과정에서 황씨에게 자장면을 시켜줬으나, 치아가 거의 빠져 제대로 씨입지도 못했다고 한다.
황씨는 자신의 범행을 모두 시인하면서도 "재물이 탐나서 그런 것이 아니다. 배가 고프고 추워서 꼭 필요한 물품만 훔쳤다"라고 진술했다.
과거 집을 나와 거의 20년째 노숙생활을 하면서,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이 두려워 낮에는 야산에서 잠을 자고 밤이면 비닐하우스 쪽으로 내려와 먹거리를 찾아 헤맸다고 털어놨다.
당초 구속영장을 신청을 검토하던 경찰은 고심 끝에 황씨에게 재기할 기회를 주기로 했다.
피해자들 또한 황씨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힌 터였다.
경찰은 황씨를 성남시 노숙인 종합지원센터에 인계해 자활시설인 '내일을 여는 집'에 입소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일자리까지 소개받은 황씨는 현재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리스타트 자활사업단에서 쇼핑백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벌써 한 달 치 월급까지 받은 황씨는 주변인들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성남수정경찰서 생활범죄수사팀 권오중 경감은 "대인기피증 증세마저 보이던 황씨가 취업까지 해서 잘 지내고 있다는 말에 정말 뿌듯했다"며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면 관계 기관과 협력해 재기의 기회를 주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