冬장군에 ‘항복한’ 노숙인들, 칼바람에 줄줄이 센터로
작성자 김형준
시설 안가고 버티던 노숙인도
 칼바람 못견뎌 줄줄이 센터로
 서울역앞 지하도 텅텅 비어
 주변 응급센터 · 급식소 등도
 문 열자마자 몰려들어 ‘북적’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하는 데다 술을 못 마시게 한다는 이유로 ‘노숙인 시설에는 안 간다’던 서울역 노숙인들이 연일 맹위를 떨치는 ‘동장군’으로 인해 속속 노숙인 시설을 찾고 있다.

21일 서울역 앞에서 만난 노숙인들은 계속되는 강추위에 혀를 내둘렀다. 서울역 앞 노숙인 시설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를 찾은 박모(65) 씨는 “서울역 6번 출구 쪽 지하보도가 비교적 따뜻해 여기서 모여 자는 ‘멤버’들이 있는데, 최근 며칠은 너무 추워 모두 ‘깡통’(다시서기센터가 운영하는 ‘다시서는 잠자리’ 시설을 일컫는 노숙인들의 은어)에서 자고 있다”며 “노숙인 시설을 찾으면 자유롭지 못하지만, 따뜻한 방바닥을 생각하면 다시 찾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박모(82) 씨도 “‘깡통’은 다 불편하지만 뜨거워서 잠을 못 잘 정도로 바닥이 따뜻한 것은 큰 장점”이라며 “날씨가 무척 추우니까 막상 갈 곳이 여기밖에 없더라”고 말했다.

한모(53) 씨는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주로 머무는데, 어찌나 추운지 밥상 위에 있던 밥 반 공기가 밤 사이 얼었더라”며 “‘방에서 얼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예전에 생활하던 노숙인센터를 다시 찾았다”고 말했다.

이종만 다시서기센터 실장은 “3년간 노숙인 센터 근처도 쳐다보지 않고 인근 편의점 주변에 머물던 노숙인들이 강추위 때문인지 센터 방문이 잦다”며 “이번 주 들면서 40명 정도 수용 가능한 센터가 이른 저녁부터 가득 차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노숙인들에게 조·중·석식을 제공하는 ‘따스한 채움터’에도 노숙인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이곳 직원 김모 씨는 “평균적으로 80∼90명 정도 이곳에서 잠을 청하는데, 20일에는 118명이나 찾아와 수용 정원을 모두 채웠다”며 “이번 주 들어 평소보다 10% 이상 방문 인원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난해 12월에는 서울역 주변 노숙인 시설 3곳에 하루 300∼400명 정도 왔는데, 추위가 본격화된 1월 들어서는 줄곧 500명 정도가 센터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여전히 ‘노숙’을 고집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들 역시 ‘중무장’은 필수였다. 강추위에도 서울역 지하도에서 계속 밤을 지냈다는 60대 남성은 “다들 춥다고 센터로 가는데, 박스 여러 개를 겹쳐 깔개로 쓰고 시설에서 구호품으로 나눠준 핫팩 3개만 곳곳에 붙이면 견딜만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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