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석증 고통' 女 노숙인 무료 수술로 새 삶 찾아
작성자 김형준
여섯 살, 한창 어리광을 부릴 나이에 이 모(44·여) 씨는 엄마를 잃었다. 기억 속 엄마는 늘 아파서 누워 있었다. 열 살이 되던 해 아버지마저 세상을 등졌다. 고향인 경남 의령을 떠나 친척들이 살고 있다는 부산행 버스에 무작정 몸을 실었다.
 
유일한 보호자였던 할머니마저 돌아가시자 이 씨는 학교를 더 다닐 수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도 채 마치지 못하고 부산의 한 보육원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폭행과 폭언에 시달려야 했다. 열세 살 소녀는 또 한 번 울음을 삼켰다.
 
두 번의 결혼과 남편 폭력 상처
10년 넘게 떠돌다 몸에 이상
대동병원 도움으로 수술 마쳐
"같은 처지 노숙인 도우며 살 것"

세 살 아래 남동생을 공부시키겠다며 이 씨는 대구의 양말 공장과 경기도 안양, 서울 등을 오가며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 1992년, 스물한 살이 되던 해 부산으로 돌아온 이 씨는 이웃집 아주머니의 소개로 남편을 만났다. 부모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자식들에게는 듬뿍 주고 싶었다. 그러나 행복한 꿈은 8년이 안 돼 깨졌다. 시어머니의 폭언과 남편의 손찌검이 이어졌다. 돌배기 딸이 막 걸음마를 뗄 즈음 이 씨는 짐을 싸 부산역으로 향했다.

떠돌이 생활은 10년이 넘도록 이어졌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보려고 수차례 약을 털어 입안에 넣기도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자신보다 더 기구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 씨는 부산역 앞에서 수제비를 끓이고, 무료 급식소에서 설거지하며 다른 노숙인들을 위로했다. 술에 의존하는 쳇바퀴 같은 삶에서 벗어나고자 낮에는 식당 일을 하면서 생활비를 벌었다. 노숙 생활 중 두 번째 남편을 만나 가정을 꾸렸지만, 폭력에 또 한 번 상처를 입고 집을 나서야 했다.

지난달에는 갑자기 호흡 곤란 증세가 찾아왔다. 응급실에 실려 가 찍은 엑스선 사진 속에는 메추리알만 한 돌덩이가 쓸개에 박혀 있었다. 다행히 대동병원 등의 도움으로 지난 5일 담석 제거 수술을 받았다. 비용은 병원에서 전액 부담한다. 이 씨는 "딴 생각 안 하고, 열심히 살겠다"며 웃었다.

대동병원에서는 이 씨 외에도 노숙인·행려인 등을 대상으로 무료 진료를 하고 있다. 지난해 전남 영광군의 한 섬에서 노예생활을 하다가 가까스로 구출된 노숙인 김 모(31) 씨 역시 대동병원의 도움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를 받고 있다. 민소영 기자 missi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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