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풍구에서 쪽잠… 노숙인 '위험한 가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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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김형준 | 작성일 | 15-12-10 09:49 | ||
추위는 가난부터 덮친다. 추위를 피하려는 노숙인들이 안전 사각지대에 노출되고 있다.
8일 오전 7시 자갈치역 3번 출구. 노숙인 강 모(59) 씨 외 3명은 지하철 환풍구에 앉아 컵라면과 소주를 '아침'으로 먹고 있었다. 이 환풍구는 노숙인들 식탁이자 쉼터였다. 지난해 경기도 판교에서 환풍구 붕괴사고로 수십여 명의 사상자가 난 사실은 이들에겐 잊혀진 듯했다. 추위 잊으려 음주량 증가 위험한 환풍구 위 잠 청해 낡은 히터 폭발·화재 우려 쉼터 부족에 거리 내몰려 이들은 컵라면과 소주로 아침을 때운 후 자갈치 시장 건어물 가게에서 거둬온 박스를 환풍구 위에 깐 후 잠을 청했다. 강 씨 일행은 "환풍구 위는 뜨거운 바람이 나와서 히터를 깔고 누운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산노숙인지원센터 김무근 생활복지사는 "노숙인들이 기온이 내려갈수록 일시적으로 추위를 피하기 위해 술에 의존하고 이는 알코올 중독으로 이어지기 쉽다"고 전했다. 도심 속 위험 지대라고 여겨지는 환풍구 역시 이들에겐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같은 날 부산역 광장. 택시 승강장과 가까운 벤치에 한 무리의 노숙인이 몰려 있었다. 이동식 히터가 있기 때문. 노숙인 박 모(66) 씨가 인근 주차장에 누군가 버린 것을 들고온 것이다. 하지만 부탄가스로 작동하는 가연성 히터였다. 녹이 슨 이동식 히터 주변으로 노숙인들이 점점 모여들기 시작했다. 히터는 인근 건물에서 재활용품으로 내놓은 사무용 의자위에 올려졌다. 곧바로 의자 시트가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들어갔다. 이가 빠진 히터 위에 신발을 올려두거나 모자를 올려두는 노숙인도 있었다. 유동인구가 많은 부산역 광장 한 가운데였다. 박민성 사회복지연대 사무처장은 "부산에는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공공 노숙자 쉼터가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종교단체 서너 곳에서 무인가로 노숙인 쉼터를 운영하기도 했으나 지난 해 한 종교단체 대표가 횡령으로 구속된 이후 쉼터가 문을 닫았고, 민간기업의 후원금도 줄어든 실정이다. 현재 부산시에는 영도구와 사상구, 금정구에 노숙인 자활시설이 있고, 이곳에서 노숙인 80여 명이 생활하고 있다. 시는 연간 5억 원 정도 예산을 지원한다. 하지만 전국에서 몰려드는 노숙인들을 수용하기에는 시설도 예산도 턱없이 부족하다. 자활시설에 들어가지 못한 길거리 노숙인들은 지하철역이나 쪽방으로 내몰리고 있다. 부산시 사회복지과 자립지원팀 권경윤 담당자는 "부산역 근처에 노숙인 종합 지원센터를 만들어 매일 순찰을 나가고 상담을 진행하고 있지만 120명으로 추정되는 거리 노숙인들을 모두 돌보기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조소희 기자 sso@bus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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